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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러브레터예술가들의 일상 2018. 4. 12. 12:24
‘예술가의 러브레터’
어느덧 새 봄이 찾아왔습니다. 꽃과 나무들은 조금씩 싹을 틔우기 시작하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봄’이라는 계절이 안겨주는 이유 모를 설렘에, 겨우내 꽁꽁 얼었던 우리의 마음도 천천히 녹아 이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꽃이 피는 봄엔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꽃 피는 봄엔 - 용혜원
시인은 ‘봄’이라는 계절에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봄바람에 날리는 꽃잎들이, 곳곳에 가득한 향긋한 꽃 내음이 연인들의 사랑을 축복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흔히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일으키는 존재를 ‘뮤즈’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접해온 예술 작품들은 때론 이 뮤즈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하지 않고 서는 못 배기는’, 이 봄이라는 계절에 예술가들의 사랑이 가득 담긴 작품들을 통해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만나봅시다.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 하였 네라.” : 유치환과 이영도
©유치환(네이버지식백과)과 이영도(한국민족문화대백과)
중세 유럽 최고의 러브 스토리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왕복 서신. 수도사와 수녀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서로를 향한 편지에 담아냈습니다. 편지에 담긴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과 애달픔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중세시대 유럽의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이야기를 떠오르게 하는 한 남녀가 있습니다. 바로 ‘깃발’이라는 시로 잘 알려진 청마 유치환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유치환은 강한 어조로 의지가 넘치던 시를 쓰던 시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조가, 그의 시가 뿜어내는 분위기가 어느 순간 완전히 달라집니다. 바로 ‘이영도’라는 여인을 만나고 나서 말이죠.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중략)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 <깃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행복>
해방 직후 유치환은 통영 여자 중학교에 교사로 부임하게 되고 그곳에서 아홉 살 연하의 아리따운 여인 이영도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영도를 향한 치환의 마음은 날마다 커졌고 그는 이 마음을 편지에 담아 그녀에게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영도는 그녀를 향한 치환의 끝없는 구애를 거절했고 조금도 틈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치환은 유부남, 이영도 자신은 남편을 일찍 잃고 홀로 딸을 키우는 처지였기 때문이죠. 사랑의 순수성 그리고 진정성과는 상관없이 이미 그들은 ‘불륜’으로 낙인찍힐 수 밖에 없는 관계였습니다.그러나 매일같이 날아오는 사랑의 세레나데에 어느 순간부터 영도 역시 치환의 편지에 답장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둘의 마음은 점점 커져갔고 물리적인 헤어짐, 6.25 전쟁이라는 시대적 흐름에도 변하지 않고 서로에게 편지로 전해졌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뮤즈’가 된 치환과 영도는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했고 다양한 작품들을 세상에 내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유치환 <파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기울여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이영도 <무제>
영원할 것 같던 이들의 사랑은 청마 유치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허망하게 끝을 맺게 됩니다. 남편도 친척도 아니었기에 영도는 치환의 마지막 가는 모습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봄바람처럼 영도의 삶에 다가온 한 남자는 또 다시 바람처럼 홀연히 그녀의 곁에서 사라졌습니다. 시로 시작되었던 그들의 사랑은 어쩌면 그들답게 조용히 막을 내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당신만의 모델이 되겠어요.”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 (위키백과)
1917년 몽파르나스의 시끌벅적한 카페. 개성이 강한 보헤미안 예술가들이 넘치던 그곳에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은 만나게 됩니다. 준수한 외모와 예술에 대한 열정이 넘쳐났던 한 청년과 아름다운 여인은 14살이라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깊이 매료됩니다. 그러나 이 사랑의 시작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술과 마약에 중독된 가난한 화가인 모딜리아니와는 달리 에뷔테른은 보수적인 가톨릭, 부르주아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둘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부모는 그들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에뷔테른은 가족과의 인연을 끊고 모딜리아니와 함께 살기 시작합니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 에뷔테른 (The Bridgem an art library)
에뷔테른을 만난 후, 모딜리아니의 예술적 창작 욕구는 극에 달했습니다. 그는 아내를 향한 무한한 애정을 담아 30여 점에 가까운 잔의 초상화를 그렸고 훗날 이 그림들은 그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한 비평가는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의 초상들에 대해 이렇게 평했습니다.
“이 작품들에서 모딜리아니는 거의 속삭이듯 말한다. 사랑에 빠진 남자가 연인의 귀에 밀어를 속삭이듯 그렇게 그림에 속삭이고 있다.”
에뷔테른은 모딜리아니를 헌신적으로 사랑했지만 그들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세상은 젊은 예술가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고 가난과 병마는 끊임없이 그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들이 함께 맞은 세 번째 겨울, 에뷔테른은 술과 약에 빠진 남편 대신 두 살 된 딸과 뱃속 아이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잠시 친정으로 떠납니다. 이때 에뷔테른의 부모는 딸이 모딜리아니를 만날 수 없도록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매일 같이 아내의 집 앞에 찾아가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만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모딜리아니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잔의 집 앞으로 찾아갈 수 없을 만큼 기력이 쇠했을 때, 그는 이웃에게 발견되었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이 소식을 들은 에뷔테른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부모님의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스물둘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지금까지 예술가들의 사랑 이야기와 그들의 절절한 마음이 담긴 작품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연인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수십 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전해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스쳐 가는 모든 감정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소개했던 작품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랑 하는 사람에게 그 감정을 인문학을 통해 표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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